원스탑잉글리쉬 영어학습방법론

국어를 잘 해야 영어를 잘 한다? 

국어를 잘 해야 영어를 잘 한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거꾸로 이런 질문을 한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국어를 잘 못 해도 영어를 잘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영어 공부를 시작한 경우에 한해야 하겠죠. 가령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한국어를 잘 못 해도 영어는 당연히 잘 할 테니까.

그런데 국어를 잘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선 학교에서 국어 성적이 좋다는 식의 협소한 의미는 지양하기로 합시다. 성적만 놓고 따지면, 단순히 학교에서 국어 성적이 좋은 사람이 영어 성적도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상식적으로 국어와 수학 성적이 비례 관계에 있지 않은 것과 똑같은 이치로 국어와 영어 성적은 비례관계에 있지 않으니까요.

그러면 학교에서의 시험 성적을 떠나 우리의 생활 속 보다 실질적인 의미에서 국어를 잘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아마도 잘 읽고, 잘 쓰고, 잘 말하는 사람? 그런 뜻에 가까울 겁니다. 다시 말해 문해력이 뛰어나고 글도 잘 쓰고 말솜씨도 좋은 사람. 그것은 기본적으로 풍부한 어휘력, 비판적이고 논리적이고 명료한 사고력, 추리력, 분석력, 뛰어난 비유나 수사적 표현 활용력을 포함한 유창한 문장 표현 능력 등을 가진 사람이겠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게 한국어든 아니면 영어나 불어, 독일어든 상관없이 언어 구사력(주로 모국어의)이 뛰어나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의미로 ‘국어에 능한’ 사람은 뛰어난 언어 구사력에 필요한 ‘비판적이고 논리적이고 명료한 사고력, 추리력, 분석력’과 같은 기초적인 능력을 소위 먹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는 어떤 언어이든 언어를 잘 구사하는 데 필요한 공통 자질이니까요!

쉽게 말해, 한국말을 ‘앞뒤가 착착 맞고 논리정연하고 유창하게’ 구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영어를 '앞뒤가 착착 맞고 논리정연하고 유창하게' 구사하는 단계로까지 올라가긴 어려운 법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다양한 논문들의 초록을 영어로 번역해 본 적이 있는데요. 학사는 물론 심지어 석사 이상의 논문 초록의 경우에도, 국어 문장의 흐름에 논리적 연결성이 떨어지고, 실질적인 논증은 불충분한 상태에서 비약이나 단정에 의해 결론이 도출되기도 하고, 상투적인 문구가 마치 화려한 장식인양 습관적으로 배치되는가 하면, 실질적인 내용의 전개 과정은 생략된 채 표현만 다르게 했을 뿐 근본적으로 똑같은 내용을 담은 문장이 지루하게 중언부언 반복되어 전체적인 문맥의 논리성이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심지어 한국어의 주어나 목적어가 누락되어 있어서 번역자인 제가 문맥 상 무엇을 주어로 하고 무엇을 목적어로 해야 할지 머리를 쥐어 짜며 추측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고, 주어와 동사가 연결되지 않는 비문도 자주 목격했습니다. 그런 내용을 영어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요?

게다가 영어를 제2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은 영어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처럼 처음부터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각이나 개념은 한국어로 구성하고 그것을 영어식으로 바꾸어 전달하는 과정을 거치게 마련입니다. 특히 복잡하고 어려운 얘기를 해야 할수록 - 아주 뛰어나게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이상 - 그렇게 되기 십상인 거죠. 바꿔 말하면, 내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게 통번역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원문, 즉 국어가 잘 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을 영어로 표현한들 잘 된 영어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저는 국어를 잘 하는 사람이 영어 실력 향상에 ‘매우 유리하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초·중급 수준의 영어를 배울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정말로 고급 수준으로 영어라는 제2외국어의 실력을 끌어 올리려 할 경우 국어를 잘 못하고도 영어를 잘 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실제로 저 역시 영어를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제 국어 실력을 되돌아보고 더 갈고 다듬어야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 이선경 (원스탑잉글리쉬 운영자)